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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해양역사]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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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00회 작성일 23-04-24 20:32

            본문

            [세계의 해양역사]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

             

            해양역사란, 인류의 역사에서 바다와 관련된 사건, 문화, 기술, 상업 및 군사 활동 등을 다루는 분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볼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해전(naval battle)입니다. 

            많은 곳에서도 그렇듯이 (1등만 기억해주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발한 해상 전투는 무엇일까?

             그래서 찾아 본 <살라미스 해전>의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해전

             

            [개요] 기원전 480년,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벌인 해전입니다. 

            800여 척의 대형 갤리선으로 이루어진 페르시아 함대를 370여 척의 소형 갤리선으로 이루어진 그리스 함대가 살라미스 섬 근처의 좁은 해협으로 끌어들여 침몰시켰습니다. 

            살라미스 해전은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대규모 해전으로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몰아내고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하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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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화가 Wilhelm von Kaulbach가 묘사한 살라미 해전] 

             

            [상세] 살라미스 전투는 기원전 480년에 열린 해상 전투로,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연합군과 제르 크세스 1세가 이끄는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는 그리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리스의 해군은 페르시아의 해군보다 작았지만, 살라미스 해협의 좁은 수역에서 페르시아의 배들이 움직이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리스의 삼중 선배들이 맹렬하게 공격하여 많은 페르시아 배들을 침몰시키거나 탈취하였습니다. 

            그리스는 약 40척의 배를 잃었지만, 페르시아는 약 300척의 배를 잃었습니다. 

            이 승리로 인해 제르 크세스 1세는 육지에서의 공격을 1년간 연기해야 했고, 이 지연으로 인해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제르 크세스 1세에 대항하여 연합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승리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을 저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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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9월 25일은 살라미 해전의 2500년 기념일이었다고 한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은 기원전 499년부터 449년까지 지속된 아케메 니드 제국과 그리스 도시국가들 사이의 일련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크루 소스 대왕이 기원전 547년에 그리스인이 거주하는 이오니아 지역을 정복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의 지휘관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 전투의 영웅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해군을 살라미스 해협의 좁은 수역으로 유인하여 그리스의 삼중 선배들이 맹렬하게 공격하여 많은 페르시아 배들을 침몰시키거나 탈취하도록 계획하였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기원전 524년경 태어나 기원전 460년경 사망한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해군 전략가로, 아테네 해군의 창조자이자 살라미스 전투에서 그리스를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에서 구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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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 장군]

             

            페르시아 제국은 이오니아의 독립적인 도시들을 통제하기 위해 각 도시에 폭군을 임명했지만, 이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모두에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499년, 밀레토스의 폭군 아리스타고라스는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나크소스 섬을 정복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했지만 실패했고, 해임을 앞두고 아리스타고라스는 헬라 아시아 전역을 반란으로 선동했습니다. 

            이것이 이오니아 반란의 시작이었고, 이 반란은 기원전 493년까지 계속되어 아시아 마이너의 더 많은 지역들이 전쟁에 끌어들여졌습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을 저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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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라미스 해전 당시 사용된 군함들]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오랫동안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이는 그리스의 동부 지방과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력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동부 지방은 아시아 마이노르를 중심으로 전성기를 누렸으며, 이 지역의 강력한 도시국가들인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그리스 전체의 대표적인 군사력이었습니다. 

            반면, 페르시아 제국은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을 지배하며,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보유했습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충돌은 주로 그리스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마라톤 전투, 테르모필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에서 격돌했으며, 이들 충돌의 결과로 그리스 동부 지방은 페르시아 제국의 침입을 막아내었습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관계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아레오파고스와 불가리아인들은 1821년부터 1832년까지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였으며, 이후 그리스는 페르시아와의 관계를 점차 개선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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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와 페르시아, 그리고 이란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현재는 경제 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가진 두 나라가 상호 교류하며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과 같은 지역에 위치한 역사적인 지역입니다. 페르시아라는 용어는 수 세기 동안 사용되었으며, 이란 남부의 지역인 페르시스(Persis) 또는 파르스(Pars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용어는 고대 그리스인들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이란고원 전체에 적용되었습니다. 

            그 지역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나라를 이란(Iran)이라고 부르며, 이 이름은 1935년에 공식적으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리스와 이란 양국은 수천 년 동안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역사적, 문화적 유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관계가 크게 긴장되었습니다. 

            그리스는 테헤란에 대사관이 있고 이란은 아테네에 있는 대사관으로 대표됩니다. 그리스는 거셈 솔레이마니의 암살을 지원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란은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군사 기지를 사용하도록 허용하면 보복하겠다고 그리스를 위협했습니다. 

            그리스는 이란에 대해 가장 비호의적인 견해를 가진 국가들 중 지속적으로 포함되어 왔습니다. 

            2014년에 그리스인의 73%가 이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한 반면 19%만이 호의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기원전 4세기경 우리나라에는 요령 지방을 중심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잇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고조선이 국가로 발전하였습니다. 

             기원전 2세기경, 서쪽 지방에서 세력을 키운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철기 문화가 확산되면서 고조선은 이를 바탕으로 주위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세력을 크게 확장하였습니다. 

            또, 한반도 남부 지방에 위치한 진의 여러 나라와 중국의 한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하면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어 부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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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 출처:위키백과]

             

            고조선이 강성해지면서 한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커 가자, 한은 대군을 보내어 수도인 왕검성을 포위, 공격하였습니다.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은 막강한 한의 대군을 맞아 1년 동안 버티면서 잘 싸웠으나, 결국 왕검성이 함락되고 고조선은 멸망하였습니다(기원전 108).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너무 어렵고, 국가 간의 관계도 수천 년이라는 기간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너무 장대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는 다른 국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세계의 해양역사]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 |작성자 ieodoresearch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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