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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도 문화] 제주도에 해민(海民)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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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04회 작성일 23-06-25 20:47

            본문

             

            [이어도 문화] 제주도에 해민(海民)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인가요?

             

            요약

            화산섬인 제주도 땅에서는 생활에 긴요한 물건들을 자급할 수 없었기에 바닷속의 희귀한 고가품을 채취하여 외부에 나가 팔아 그것들을 사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지방과 달리 육상에서는 값나가는 물건이 생산될 수 없어서 보재기(어부), 잠녀(해녀), 뱃주인(무역상), 심방(무격) 등의 해민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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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순력도, 출처: 제주도민일보] 

             

            본문

            ‘해민(海民)’이란 말은 1997년 송성대가 『제주인의 해민정신』이란 논저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서 고대 때부터 바다를 무대로 하여 생계를 유지했던 남자 어로자인 보제기[浦作人], 

            여자 어로자인 좀녜[潛女], 해상무역상인 뱃주인[船主] 그리고 이들의 신앙생활을 주재하는 심방[巫覡] 등을 포괄하는 말입니다. 

            바다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었기에 초자연적인 신에 대한 믿음이 보다 강했습니다.

            제주도에 해민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미개한 원시생활을 벗어나 문명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제주도의 문명 생활을 유지토록 한 리더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섬 안에서 자급할 수 없는 소금(鹽), 옷감(布), 약재, 도서, 종자, 기타 원자재 등 의식주와 관련된 생필품을 구입하고 조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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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녀 의상, 출처: 루리웹]

             

            물물교환 경제의 전근대에 제주도에서는 돈이 될 만한 재화, 즉 미화(米貨)로 사용된 쌀도 나지 않았고, 포화(布貨)라 불렸던 옷감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희소가치가 있어 돈이 될 만한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바닷속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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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우, 출처:서울신문]

             

            제주도의 연안 바다는 뻘바다를 이루는 한반도와 중국대륙과 달리 돌바다인 데다가 한라산 화산체가 방패를 엎어놓은 것 같은 완만한 경사의 순상화산을 이루어 수심이 얕습니다. 

            또한 햇볕이 바다 밑까지 도달하여 해조류 생육에 유리했고 이것이 많은 어패류의 서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물론 갓, 망건을 만드는 말총이나 우황, 녹용, 탐라포(사슴, 소, 말 린 멧돼지 고기) 등의 육상 자원을 이용한 상품이 생산되었지만 소량에 불과했습니다. 

            해민들에 의해 생산되는 ‘패류의 황제’라는 전복, 탐라에서만 산출되었던 옥가(玉珂), ‘야명 주(夜明珠)’라는 진주에 비할 바가 못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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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성굿, 출처:고성신문]

             

            사농공상의 신분사회로서 상(商)을 천시하는 한반도와 달리 제주도에는 해민에 대한 천시사상이 없었던 것도 해민들의 출현과 활동에 유리했습니다. 

            양반과 상민이 뚜렷이 구별되는 한반도부에서는 유교 근본주의로 인해 여성의 옥외 활동이 금기되었지만, 

            평등사회인 제주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활동도 자유로워 제주섬을 벗어나 한반도, 중국대륙, 일본열도의 바다로 나아가 활동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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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덕, 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17세기 때 의녀 김만덕이 무역선의 뱃주인이 되어 한반도부와 상거래를 하여 한국 최초의 여거상(女巨商)으로 거부가 되고, 굶어 죽는 도민을 구휼했다는 기록도 제주도였기에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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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덕 기념관]

             

            [참조사이트]

            http://www.n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7484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9001844 

            http://www.gosnews.kr/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194&idx=24732

            http://www.jeju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522

             

             

            [이어도 문화] 제주도에 해민(海民)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인가요?|작성자 ieodoresearchkorea 

            https://blog.naver.com/ieodoresearchkorea/22313532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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