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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의 기원] 인류 문명의 기원을 찾아서 ② 이집트 나일강 문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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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00회 작성일 23-10-1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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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1중간기(기원전 2181년 ~ 기원전 2040년): 제7~제11왕조(통일전)

            제7왕조부터 제10왕조 까지를 <저왕국>이라고 부르며, 이 시기에는 내란과 침략이 빈번했습니다. 



            4. 중왕국 시대(기원전 2040년 ~ 기원전 1782년): 제11(통일후)~제12왕조

            제11왕조에서 제12왕조 까지를 <중간 왕국>이라고 부릅니다.  

            중간 왕국은 저왕국의 혼란을 극복하고 이집트를 재통일하였습니다. 

            중간 왕국은 나일강 하류와 상류를 연결하는 관개 채널을 개발하고, 농업과 무역을 활성화시켰습니다.  

            또한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교류하였습니다. 

            중간 왕국은 문학과 예술이 발달한 시기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속담과 이야기가 많이 작성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나우스와 신오시리스", "신수와 죽음" 등이 있습니다. 


            5. 제2중간기 (기원전 1782년 ~ 기원전 1570년): 제13~17왕조

            중왕국 시대가 끝난 후 신왕국 시대가 열릴 때까지의 혼란기로 힉소스인이 침략하는 등의 사건들이 있었다. 


            6. 신왕국 시대 (기원전 1570년 ~ 기원전 1070년) : 제18~20왕조 

            제18왕조에서 제20왕조 까지를 <신왕국>이라고 부릅니다.  

            신왕국은 이집트의 제2의 전성기로, 군사적, 외교적, 문화적으로 큰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신왕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걸쳐 넓은 영토를 통치하였습니다.  

            특히, 투트모스 3세는 "나일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리며,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아멘호텝 4세가 아테온만을 숭배하는 아테네교를 선포하고, 엑스텐시즌으로 이름을 바꾸는 등의 종교적 혁신을 시도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 후에는 다시 기존의 종교로 복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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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트모스 3세, 사진: madainproject.com] 


            7. 제3중간기(기원전 1069년 ~ 기원전 525년) : 제21~제26왕조

            제21왕조에서 제31왕조 까지를 <후기 시대>라고 부릅니다.  

            후기 시대는 이집트의 쇠퇴기로, 외부의 침략과 내부의 분열로 인해 중앙권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리비아인, 쿠시인, 아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페르시아인 등이 이집트를 침략하거나 지배하였습니다.  

            이집트인들은 간간이 독립을 되찾았지만, 오래 유지하지 못하였습니다. 



            8. 말기왕조 시대 (기원전 525년 ~ 기원전 332년) : 제27~제31왕조

            후기 시대의 마지막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집트 정복으로 끝났습니다.  



            9. 그리스-로마계 왕조 & 이집트 제32왕조(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기원전 305년 ~ 기원전 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이집트를 헬레니즘 문화권에 편입시켰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에는 그의 장군 중 하나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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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로의 영어 이름은 'Alexander the Great'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전쟁 영웅을 뽑을 때 제일 많이 거론되는 인물, 사진:thecollector.com]​


            가깝게는 우리 한반도의 역사에서 처럼 (수 천년전을 기준으로 비교할 때) 고조선, 발해, 삼국, 후삼국, 고려, 조선... 이런식으로 각 왕조의 이름이 따로 지어진 경우와 비교할 때, 왠지 무구했던 수천년의 기록을 고려할 때, 

            (시험공부에) 학생 입장에서 무척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각 왕조마다 구분을 짓게 되기까지 역사적인 사건과 변화가 있었겠지만요. 

            어쨌거나 이집트 문명이 서양문명사에서 그리스 아테네 문명과 더불어 양대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 까지 수천년 동안 번성할 수 있었던 원천은 <나일강>이라는 자연의 선물을 잘 이용할 수 있었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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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있는 모습, 세바스티아노 콘카의 작품, 약 1736년, 프라도 박물관 소장.사진:thecollect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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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8세기 이집트의 비문, 하단 사진 설명 참조]



            프톨레마이오스 카이사리온(왼쪽, 아들)과 클레오파트라(오른쪽, 엄마)의 형상. 원래 기원전 8세기에 만들어진 카르나크의 이 화강암 비석에 있는 초기 비문 위에 새겨져 있다.

            클레오파트라 통치 13년에 새겨진 새로운 글과 이미지는 클레오파트라의 장군 중 한 명에게 경의를 표하는 내용.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였다. 토리노 이집트 박물관 소장 

            사진 및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피


            이제는 해양문명과 강 문명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난번 아테네의 해양문명과 비교하여 이번 이집트의 강(대하, 大河) 문명을 역사 속에서 비교해 본다면 대표적인 물을 둘러싼 두 종류의 문명의 역사에 대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해양문명은 바다를 통해 다른 문명과 교류하고 영향을 받는 문명을 말합니다. 해양문명은 보통 섬이나 반도에 위치하며, 해상 무역과 항해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해양문명의 예로는 고대 그리스, 로마, 페니키아, 마야, 폴리네시아 등이 있습니다.

            강 문명은 강 주변에서 농업을 기반으로 한 문명을 말합니다. 강 문명은 보통 내륙에 위치하며, 강의 범람으로 인해 비옥한 토지를 확보하고 관개 시설을 발달시켰습니다. 

            강 문명의 예로는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중국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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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의 발상지 4대강 유역, 사진:nsms6thgradesocialstudies.weebly.com]



            해양문명은 바다를 통해 다른 문명과 쉽게 교류하고 영향을 받았으며,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수용하고 개방적이었습니다. 반면, 강 문명은 내륙에 고립되어 있거나 적대적인 이웃과 둘러싸여 있어서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유지하고 보수적이었습니다.

            또한 해상 무역과 항해 기술이 발달하여 다른 지역의 자원과 상품을 수입하고 수출하였으며, 식민지를 건설하고 확장하였습니다. 강 문명은 농업을 기반으로 하여 자급자족하는 경제를 유지하였으며, 강의 수송을 이용하여 교역하였습니다.

            해양문명은 도시국가 형태로 조직되어 있었으며, 민주주의나 공화주의와 같은 정치 체제를 가지거나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였습니다. 강 문명은 중앙집권적인 왕국이나 제국 형태로 조직되어 있었으며, 

            독재나 전제주의와 같은 정치 체제를 가지거나 파라오나 황제와 같은 권위적인 지도자를 숭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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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세스 3세가 바다의 민족들과 전쟁 중인 모습, 사진:thecollector.com] 


            고대 이집트 왕조가 바다에서 했던 활동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려 했으나,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지중해와 붉은해에 인접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항구도 많이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항구를 통해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였으며, 해군도 운영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이집트의 왕조들은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와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 제18왕조의 투트모스 3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걸쳐 넓은 영토를 통치하였습니다.

            고대 이집트 해군은 나일강을 통해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또한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와 교류하거나 전쟁을 벌였습니다. 고대 이집트 해군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기원전 1540년경, 제11왕조의 파라오 아멘메헷 1세는 하이크소스를 추방하고 이집트를 재통일하였습니다. 그는 나일강 하류와 상류를 연결하는 관개 채널을 개발하고, 농업과 무역을 활성화시켰습니다. 

            그는 또한 해군을 강화하여 남쪽의 쿠시와 북쪽의 페니키아와 교류하였습니다.


            기원전 1479년부터 1425년까지, 제18왕조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는 "나일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리며,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걸쳐 넓은 영토를 통치하였으며, 해군을 이용하여 다른 나라들과 무역하거나 전쟁을 벌였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바다를 건너 시리아의 우가리트와 동맹을 맺었으며, 크레타섬의 미노아 문명과 교류하였습니다.


            기원전 1198년경, 제20왕조의 파라오 람세스 3세는 바다에서 침략해 온 바다민족들과 전험을 벌였습니다. 

            그는 이집트 해안에 배를 배치하고, 성벽과 요새를 건설하여 방어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해군을 이용하여 바다민족들의 배를 공격하고, 승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기원전 3천년 동안 번성을 누리던 이집트 나일강 문명은 결국 지중해 건너편 바다문명을 퉁치했던 문명에 복속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강을 통해 풍성한 곡물의 혜택을 누렸던 이집트인들은 산악지대인 그리스의 도시국가들과 달리 바다를 개척해서 먹을 것을 구해야 할 일이 거의 없으니,

             <강 문명> 혜택이 영원할 수 는 없는 것이죠. <바다 사람>들과 교류를 하거나 혹은 당하거나...

             즉, 이집트 왕조들도 타민족을 뛰어넘어 세력을 펼치기 위해서는 배를 만들어 강을 따라서건, 바다를 건너건 외부로 진출을 해야만 했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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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지중해에서 천년 동안 해상 무역 네트워크로 인해 큰 번영을 누렸던 고대 페니키아의 왕국의 해상전투, 사진: thecollector.com] 



            생각해보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였던 한반도의 여러 왕조들이 바다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천년전 혹은 수백년 전 지금과 같이 우리의 문화를 외부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게 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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