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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해의 이해 12] 유물·유적에 나타난 해상 문물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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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14회 작성일 23-12-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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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이 해상을 통한 교류의 흔적인가를 식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안가나 도서 지역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문물을 대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바다를 건너온 유물이나 문화적 요소를 대상으로 삼되, 다만 앞서 서술한 교역항의 개발에서 초기철기시대 이후의 문물 교류 양상은 이미 살펴보았기 때문에 주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물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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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몽토기, 사진: toki.tokyo] 


            (1) 동남해안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일본의 죠몽토기

            동남해안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들에서 일본의 죠몽시대 토기편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예컨대 부산 동삼동패총, 범방패총, 조도패총, 울주 신암리유적, 통영 연대도패총, 상노대도패총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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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동삼동패총, 사진: 위키백과] 


            이들 가운데 대표적 유적이라 할 수 있는 동삼동패총에서 출토된 죠몽토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합니다.

            동삼동패총은 신석기시대 전 기간에 걸친 유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되었습니다. 

            이 패총에서는 바다를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 죠몽 전기의 세노칸식(塞神式)·도도로키식(轟式)·소바타식(曾畑式) 토기, 죠몽 중기의 아타카식(阿高式) 토기, 죠몽 후기의 니시비라식(西平式) 토기편들이 출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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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몽 시대(기원전 10,000~200년)의 '카엔가타' 도자기는 의례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출처: japantimes] 



            이러한 죠몽토기들은 대체로 항해 이동의 결과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BC 3000년경의 소바타식 토기 이전의 죠몽 전기의 토기들은 표류 이동의 결과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그것들이 항해 이동의 결과라면, 항해의 성공을 보장받기 위하여 대한해협을 주간에 도항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이 갖추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시기는 돛의 출현과 밀접히 연관되며, 아무리 올려 잡아도 BC 2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또한 청동기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대한해협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조선술과 항해 기술을 보유했었을 것으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연안의 대한해협이나 제주해협 또는 매물수도(흑산도와 본토 사이 수로) 등을 도항할 때 횡방향으로 받는 조류는 현대의 선박에게는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선사시대의 돛이 없는 통나무배나 뗏목배에게는 그것이 치명적인 장애요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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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세포진성(거제)에서 대마도까지의 거리는 50km라고합니다. 출처: 거제신문] 


            기상과 수로조건을 완전히 파악하고 최적의 시기를 이용한다 하여도 강한 해·조류와의 사투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며, 조난당할 가능성이 매우 컸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건 모험 항해가 아니면 시도되기 어려운 항해였습니다. 

            그렇더라도 동삼동에서 출토된 죠몽 토기들이 신석기시대 전 기간을 망라한 유물이므로 항해 교류의 결과물로 주장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무려 3000년을 넘는 기간에 걸친 유물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볼 때, 교역품의 잔재로 보기에는 출토된 유물의 분량이 너무나 빈약합니다. 

            동삼동 유적에서 이처럼 오랜 기간의 죠몽 토기가 나타나는 현상은 우리나라 동남 해안에 표착한 조난자들이 해안을 따라 인적이 있는 곳을 찾거나 일본으로 귀환하고자 하였을 때 쓰시마가 가장 가까이 보이는 부산 지방을 당연히 찾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정됩니다.

            동삼동 유적의 시기에 한국 신석기문화가 해협을 건너 일본열도로 이동하였던 것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후대의 사례이긴 하나 조선시대에 한국에서 일본으로의 표류 빈도가 일본에서 한국으로의 표류 빈도보다 훨씬 많은 사실이 그러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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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삼동패총전시관, 사진: Youtube] 



            (2) 남해안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제 석기



            흑요석(黑曜石)은 그 예리함으로 인하여 신석기시대에 화살촉, 톱날, 칼, 송곳 등으로 유용하게 사용된 재료입니다. 한반도에는 백두산에 원석 산지가 알려져 있고, 일본열도에는 큐슈, 혼슈 등 여러 곳에 산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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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요석 돌칼, 출처: 경북일보] 


            남해안 특히 동남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들에서 다량의 흑요석제 석기와 박편이 출토되었습니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들 흑요석들은 대부분 큐슈산이라고 합니다. 

            즉 바다를 건너온 유물들이다. 일반적으로 이들 흑요석들은 해상 교류 곧 교역의 결과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남 지역에서 출토된 모든 흑요석들을 교역의 결과물로만 이해할 수는 없으며, 상당수는 표류 이동의 결과물로도 보아야 합니다. 

            흑요석의 연대를 정확히 판별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으나 항해 이동 혹은 표류 이동의 여부는 앞서 동삼동패총의 죠몽토기에서 고찰한 기준이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조사된 19개소의 유적중에서 흑요석이 가장 많이 출토된 유적은 부산의 동삼동, 범방, 남해안의 욕지도, 연대도패총 등입니다. 이들 유적에서는 흑요석의 원석이 가공되었던 것으로 보아, 흑요석의 공급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한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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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주요 선사시대 흑요석 산지. 백두산과 zb슈의 흑요석 노두도 표시되어 있다. 출처: Researchgate]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동삼동의 흑요석이 만일 일본의 큐슈산이라면 쓰시마의 흑요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쓰시마의 고시다카(越高)유적에서는 큐슈산으로 알려진 흑요석 81점이 유물포함층에서 출토되었는데, 층위가 다소 불분명하지만 죠몽 조기말(早期末)로 편년되는 마에비라식(前平式) 토기 그리고 고시다카식 토기와 함께 출토되었다고합니다. 

            그밖에도 죠몽 후기의 쓰시마 사가(佐賀)패총에서 약 3,700점의 흑요석이 출토된 바가 있습니다. 이 흑요석들은 일반적으로 큐슈와의 교역 곧 항해 교류의 결과물들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죠몽 전기 이전의 쓰시마 흑요석에도 표류적 요소가 많이 내포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쓰시마와 큐슈 사이의 수로 조건도 쓰시마와 한국 동남해안 사이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욕지도 패총과 더불어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흑요석 출토 유적인 상노대도 패총에 대해서 항해술적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상노대도는 통영시 욕지면에 속하는 섬입니다. 그 섬에 있는 신석기시대 패총이 여러 기관들에 의해 각각 발굴되었는데 무토기문화기(無土器文化期)부터 즐문문화기(櫛文文化期)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친 흑요석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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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욕지도의 사찰, 출처: 한산신문] 


            상노대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동남 지역에는 흑요석 광산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흑요석의 원산지 여부를 떠나서 일단 한국의 동남해안에서 주변 섬들로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일 것입니다. 

            상노대도와 인근 육지 간의 최단거리는 9해리이고, 통영시 연대도까지의 거리는 8해리입니다. 이 해역에서 조류의 평균유속은 0.7~1.3노트이며, 밀물 때는 북서류가 그리고 썰물 때는 동남류가 흐릅니다. 육지에서 상노대도로 건너갈 때 이 부근 바다가 대체로 잔잔한 곳이기 때문에 선사시대에도 조류라는 장애물은 극복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인근에 섬들이 많고 섬들에는 신석기시대 패총 유적이 산재하고 있으며, 상노대도는 그 중심적 위치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조난을 당하여 표류할 때도 생존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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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노대도 패총 (上老大島 貝塚), 사진: 한국민족문화대사전]​


            이러한 여러 조건들과 그리고 앞서 언급한 선사시대 해상 이동의 기본 성격을 동시에 고려해 볼 때, 선사시대에 육지와 상노대도 사이에 항해 교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상노대도의 선사인들은 적어도 BC 6000년 이전부터 7해리 정도의 거리를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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